오스만 제국과 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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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과 유고슬라비아


제1차 세계 대전의 주범 독일과 그의 동맹국둘은 전쟁에 패하면서 막대한 책임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중 오스만 제국과 유럽의 몰락이 시작 되었습니다.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아는 승전국인 세르비아가 차지하였습니다. 이후 만들어진 나라가 유고슬라비아가 되겠습니다. 연합국은 발칸 반도의 독립국이던 몬테네그로를 새로 생긴 유고슬라비아에 넣어 묶어 버렸습니다. 독일 편에[서 전쟁을 치름 불가리아는 서부 지역의 영토를 유고슬라비아에 넘겨주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역사도 문화도 다른 여러 민족이 억지로 묶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발칸 반도에는 새로운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웠고 발칸 반도는 1914년 이전보다 더 불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패전국이 된 오스만 제국도 전재우 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나라의 영토를 대부분 잃었습니다. 패전국들은 베르사유 체제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특히 독일은 조약 체결 과정에서 발언권을 주지 않은 점이나 지불 능력을 뛰어넘는 막대한 배상금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독일 국민들도 모든 탓을 독일에만 돌린 일에 분노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과 유고슬라비아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 여러나라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1천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유럽 곳곳은 황폐해졌습니다. 이로인해 경제적인 손실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 독일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긴 프랑스, 영국도 산업에 큰 피해를 입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몰락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경제적 위기는 승전국에도 손해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이 지불한 배상금으로 빚을 갚고 산업을 일구려던 승전국들은 독일이 경제 상황을 이유로 배상금 지불을 미루자 배상금 액수를 줄여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미국은 제1차세계 대전 중 연합국에 군수품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으며 전쟁 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유럽 각국에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이때부터 세계를 이끌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 되겠습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한 해군을 갖게 된 미군은 태평양 지역과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키워갔습니다. 독일의 재침략을 우려한 프랑스 외부 장관 브리앙은 강력해진 미국에 전쟁 방지를 위한 양국 간 협정을 맺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 꺼려 했습니다. 미국국무 장관 켈로그는 전쟁 방지를 위해 여러 나라가 함께 맺는 다자간 조약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조약이 1928년 8월 27일에 미국, 독일, 소련 등 15개 나라가 프랑스 파리에서 조인한 켈로그 브리앙 조약입니다. 

부전 조약으로도 불리는 이 조약은 국제 분쟁을 전쟁으로 해결하지 말자는 국가 간의약속 입니다. 조약을 맺은 독일과 일본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조약을 깨뜨리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공화정이 뿌리 내리고 민주주의 제도가 틀이 잡히면서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약한 존재가 여성이 었습니다. 여성의 힘을 알게 된 계기는 전쟁입니다. 전쟁 중에 남성이 할 일을 도맡아 한 여성에게도 선거에 참가하여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여성들이 전쟁 때 세운 공이 큰데 남성만 투표하고 여성은 그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여성들은 선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더 높여 나갔습니다.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하고 공개 연설을 하거나 단식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선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날로 늘어만 갔습니다. 이로인해 여성의 선거권이 인정되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1800년대 중반부터 여성들이 선거권을 달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계속 무시당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해인 1918년 영국은 선거법을 개정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일조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기여했기 때문에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내거나 학위를 가진 서름 살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었습니다. 그후 영국은 1928년 법을 다시 개정하여 스물 한 살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독일과 미국은 각각 1919년 1920년 여성의 선거권을 헌법에 분병하게 밝혀 보장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나라가 독립을 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선거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여성의 선거권을 보장한 나라가 되겠습니다. 1896년 여성 기독교인 금주 동맹이 처음으로 선거권을 요구했는데 캐서린 셰퍼드라는 여성운동 지도자가 선거권을 달라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서명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점점 늘어 1893년에는 뉴질랜드 성인 여성 인구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의회는 결국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선거권을 보장하였습니다. 뉴질랜드는 광활한 초원 만큼 대단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제1차 세계 대전의 후휴증으로 유럽의 전체 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쟁의 패배로 인해서 오스만 제국은 몰락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형제의 나라 터키가 세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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