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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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나폴레옹


영국과 인도 그리고 나폴레옹


영국의 의해서 결국 식민지 인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영국은 원료와 상품을 빠르게 운반하기 위해 철도를 놓으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인도의 노동력을 착취하였습니다. 또한 인도 정부는 영국에서 돈을 빌려 나라 곳곳에 철도를 깔아야 했습니다. 농사지을 물을 대는 시설도 만들어 졌습니다. 이 역시 인도에서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영국의 속셈이였습니다. 인도인들은 마침내 들고 있어났습니다. 식민지 인도를 참을수 없기 때문이였습니다. 1857년 인도인 용병들인 세포이가 항쟁을 일으켰습니다. 세포이는 신식 총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 총을 쏘려면 탄창 마개를 입으로 물어뜯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개에 소와 돼지의 기름이 발라져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 하였습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는 세포이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화간 난 세포이들은 영국 군인들을 공격하고 무기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무굴 제국의 황제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농민과 시민드리도 무리에 끼어들어 항쟁군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세포이의 항쟁으로 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 곳곳에서 무굴 제국의 영광을 되돌리자는 독립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영국은 군대와 무기를 가득 실은 전함을 인도를 보냈습니다. 식민지 인도를 만들기 위한 초석으로 인도군은 최신식 무기를 갖춘 영국군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도는 무참히 졌지만 세포이의 항쟁은 인도 최초의 민족 운동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리고 있는 역사로 남았습니다.

 

 

영국 나폴레옹

 


전쟁에서 진 무굴 황제는 항쟁을 도왔다는 이유로 미얀마로 쫓겨났습니다. 무굴 제국도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인도 황제를 겸하며 인도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식민지 인도의 시작이였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침략한데 이어서 프랑스는 19세기에 들어 번영을 누렸습니다. 1848년 선거에 당선되어 프랑스 대통령이 된 나폴레옹 3세는 강력한 독재 정치를 펼쳤으며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은행을 새로 만들어 금융 제도를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분야의 산업을 개발하였습니다. 산업이 발전한 만큼 일자리도 자연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폴레옹 3세는 낡은 건물과 깨끗하지 못한 거리를 부수고도서관, 극장, 공원과 같은 편의시설을 많이 지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나라가 안정되자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프랑스를 더욱 힘 있는 나라로 만들려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인도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영국과 벌인 플라시 전투에서 지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직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손을 뻗지 않은 베트남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중 1857년 에스파냐의 호세 마리아 디아스 신부가 베트남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프랑스는 이때 싶어 나폴레오 3세는 가톨릭 선교사들에게 대한 박해를 되갚아 주겠다는 구실을 들어 베트남에 쳐들어 갔습니다.

1858년부터 베트남과 프랑스는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우선 베트남의 다낭을 공격한 뒤 이듬해에 사이공을 점령하였습니다. 베트남은 바다와 맞닿은 지리적 특징 때문에 다른 나라의 지배와 침략을 자주 받아 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몽골 제국을 이겼을 정도로 용감한 베트남 국민들은 프랑스의 침략에 끈질기게 대응하였습니다. 칼로 무장한 채 황제를 지키고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자는 구호를 외치며 밀림에 들어가 프랑스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최신식 무기를 갖춘 프랑스군을 끝내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패한 베트남은 1862년과 1874년 두번에 걸쳐 프랑스와 사이공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그 조약으로 베트남 일부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베트남을 프랑스의 보호 아래 두고 앞으로 다른 나라와 외교를 하려면 반드시 프랑스의 허락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중국 청나라는 펄쩍 펄쩍 뛰었습니다. 청나라는 전통적으로 베트남이 자기네 조공국으로 자신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는 사이공 조약이 무효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도 프랑스의 지배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청나라는 베트남 북부에 군대를 파견하였으며 1883년부터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전쟁을 청, 프 전쟁 또는 청, 불 전쟁으로 불렸습니다. 프랑스는 이번에도 청나라 군대를 강력한 무력으로 짓눌렀습니다. 청나라는 자기들이 서양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서양 국가들에게 아편 전쟁과 청,프 전쟁에서 계속 패하여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유럽의 강대국들은 아시아 나라들을 식민지화 하였습니다. 우리 조선도 자유로울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그리고 미국, 러시아 등 부강한 나라들이 호시탐탐 조선을 지배하려고 했으며 실제로 결구 일본에 나라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아시아 대부분 나라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을 대표하는 왕들의 무능함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금더 빨리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개혁을 하고 나라의 산업화를 앞당겼다면 이러한 수모를 겪지 않았도 되었을 겁니다. 이는 너무 자만에 빠진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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