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권한, 권리 장전
- 역사 공부
- 2022. 1. 30.
왕의 권한, 권리 장전
제임스 2세는 왕이 되자 자신의 맹세를 어기고 군대를 만들어 반대파를 처단하였습니다. 왕권을 위협하는 심사법과 인신 보호법을 없애 버렸습니다. 독식할 가톨릭교도였던 제임스 2세는 가톨릭교도를 높은 관직에 등용하고 저항하는 영국 국교회 신자와 청교도를 잡아 가두었습니다.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왕의 모습을 보며 의회는 긴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의회와 국민은 제임스 2세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죽으면 신교도인 두 딸 중에 하나가 왕위를 이을 것이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1688년 제임스 2세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영국은 가톨릭 왕국이 세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의회는 1688년 6월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네덜란드로 시집간 공주 메리와 그녀의 남편 윌리엄을 왕으로 세울 계획을 세웠습니다. 서로 대립하던 토리당과 휘그당은 이번에는 국왕을 몰아내고 제임스 2세 아들을 왕위 계승자로 삼으면 안된다는 것이 합의해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해에 영국 의회는 네덜란드로 몇 차례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네덜란드 총독인 윌리엄 3세와 제임스 2세의 딸이며 윌리엄 3세의 부인인 메리에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초청장에는 종교의 자유와 재산권의 보호를 위하여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의 국왕이 되어 달라는 청이었습니다. 윌리엄 3세와 메리 부부는 의회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영국을 가톨릭으로부터 보호하고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왕이 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1688년 11월 마침내 윌리엄 3세와 메리 부부가 군대를 이끌고 런던에 들어왔습니다. 제임스 2세는 얼른 프랑스로 몸을 피했습니다. 윌리엄 3세와 메리부부는 아버지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도망갈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피를 흘리지 않고 왕이 바뀌었다고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1689년 2월 의회는 윌리엄 3세와 메리를 영국의 공동 왕으로 임명하고 이 두 명의 왕이 영국을 통치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1689년 2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윌리엄 3세와 메리 부부의 대관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의회는 윌리엄 3세와 메리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면서 권리 장전에 승인하도록 하였습니다. 권리 장전은 대헌장, 권리 청원과 함께 영국 의회 역사의 3대 문서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 법안에 따라 의회가 왕권보다 높다라는 정치적 원칙을 세울게 되었으며 국왕은 의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야 했습니다. 권리 장전은 그전의 절대 왕정 시대를 끝내면서 한 사람이 마음대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막고 왕과 의회의 공동 통치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탄생시켰습니다. 윌리엄 3세와 메리가 권리 장전에 승인함으로써 국왕은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거둘 수 없게 되었으며 법률을 폐지할 수 없으며 군대를 모집할 권리도 없어졌습니다. 또한 왕위 계승 문제를 국왕이 혼자 결정할수 없고 반드시 의회의 논의를 거쳐야 했습니다.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 이후 돌아온 왕들이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습니다. 권리 장전은 이후 미국의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의 독립 선언문과 절대 왕권 아래에서 신음하던 프랑스 국민들이 프랑스 혁명의 참뜻을 알리고자 작성한 프랑스의 인권 선언은 이 권리 장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권리 장전은 영국의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절대 왕정을 무너뜨린 영국은 1689년 왕이 권리 장전을 승인함으로써 입헌 군주국이 되었습니다. 입헌 군주제는 왕이 헌법으로 정한 제한된 권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 체제를 가리킵니다. 이는 곧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왕은 정책을 결정할 때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며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에도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은 자신의 자문관도 의회에서 추천하는 인물 중ㅇ에서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이로써 왕의 권한은 약해지고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저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권리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총리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영국은 누가 다스리냐면 바로 귀족 계급과 시민 계급으로 이루어진 의회가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이끌어 갔습니다. 그렇다고 왕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형식적이나마 의회를 맡아서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로써 왕과 의회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오늘날 영국에서의 왕은 국가 원수로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나라를 다스리는 역할은 의회의 우두머리인 총리가 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대표로 이루어진 의회에서 나라의 일을 결정하기 때문에 영국의 정치 제도는 입헌 군주제와 의회 민주주의 조화를 이룬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의회 제도는 계속 발전하여 의회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민주주의 상징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