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그리고 냉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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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그리고 냉전 시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는 하나로 뭉쳐 국제 연합을 만들고 평화를 도모하는 회담을 가져 평화로운 시대로 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습니다. 종교 그리고 정치념인 이념이 달라 세계는 냉전 시대에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공동의 적들이 사라지자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과 소련이 체재 경쟁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이 독재 체제를 이루며 강력한 공산주의나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무섭게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1944년 독일군을 추격하여 동유럽으로 들어간 스탈린의 소련은 독일군이 물러나 자리에 우호 세력들을 후원하여 정권을 장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로인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고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는 내전을 거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1949년 동독과 헝가리가 공산주의 정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동유럽 나라들은 대부분이 공산주의 국가로 바뀌자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이를 두고 철의 장막이라는 말로 비판 하였습니다.

철의 장막이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이 매우 폐쇄적인 성격을 띠고 국민을 감시하는 것을 비판한 표현이 되겠습니다. 1946년 영국의 처칠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연설에서 이말을 쓴 뒤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소련이 동유럽을 공산화하고 세력을 넓혀 나가자 위기르 느낀 미국은 공산주의가 퍼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미국과 스탈린의 소련 두 나라 사이의 대립은 점점 심해졌으며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 형성된 대립 구도를 냉전이라고 말합니다. 비로소 냉전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냉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무력을 사용하는 전쟁인 열전에 대비되는 말로 직접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 외교, 정보 등을 수단으로 하는 국제적 대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고문으로 활동한 버나드 바루크가 1947년 냉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유행 언어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경제 지원을 통해 정부가 공산당의 반란을 잠재우도록 도왔습니다. 그러고는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나라는 적극 돕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를 트루먼 독트린 이라고 합니다. 

 

스탈린 그리고 냉전 시대


더불어서 미국은 서유럽이 전후의 경제 위기 상황에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1947년 6월  5일 시장 경제 체제를 채택하는 나라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싸움이 시작 되었습니다. 미국은 3년 동안 서유럽 16개 나라에 12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지원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유럽 부흥 계획이지만 제안자인 미국 국무 장관 마셜의 이름을 따서 마셜 계획이라고 불렸습니다. 또한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로 이름 붙임 군사 동맹까지 맺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행동을 크게 격분한 스탈린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동유럽 공산 국가들을 모아 마셜 계획을 대항하는 동유럽 경제 상호 원조 회의 즉코메콘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해당하는 군사 동맹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도 만들어 미국과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냉전의 시대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총성 없는 전쟁인 냉전 체제는 독일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독일은 영토 전체와 베를린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네나라가 다스리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점령하고 있던 서쪽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고 경제 부흥을 위해 화폐 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러자 동쪽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과 점령 지역 안에 있는 베를린으로 통한 모든 도로르 막아 버렸습니다. 이때부터 베를린에 장벽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베를린 지역에 전기와 석탄 식량 공급을 중단시켰습니다. 이를 베를린 봉쇄라고 합니다. 250만여 명이 거주하던 서베를린 지역은 육지속의 섬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자 미국은 대형 수송기를 동원하여 서베를린에 물자를 공급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듬해 5월에 봉쇄가 풀릴 때까지 11개월간 지속되었습니다. 1949년 급기야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점령하던 서쪽 지역은 독일 연방 공화국으로 소련이 점령하던 동쪽 지역은 독일 민주 공화국으로 정부가 세워지면서 갈라졌습니다. 이후 동독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스니다. 1961년에는 하루에 1천 500명이 넘는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소련과 동독 정부는 그해 8월에 동, 서 베를린을 가로지른 베를린 장벽을 쌓아 주민들이 오갈 수 없게 했습니다. 이후 약 43킬로미터에 이르는 베를린 장변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주민들이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 탈출하는 것을 막기위해 1961년 8월에 만들어졌으며 그 뒤 28년 동안 냉전 체제가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의 소련이 붕괴된후 독일은 통일을 앞둔 1989년 베를린 주민들에 의해서 붕괴가 되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지금 현재까지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분단 국가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도 합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서 남과 북을 가로지른 3.8선을 제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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